이달의 문화예술인 [소리짓발전소] 서승희 대표를 만나다.
이달의 문화예술인 [소리짓발전소] 서승희 대표를 만나다.
  • 글로벌뉴스충청 문수협 기자
  • 승인 2020.08.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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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감각으로 공연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행동하는 예술단체 소리짓발전소
소리짓발전소 서승희대표
소리짓발전소 서승희대표

 본지 글로벌뉴스충청 취재진은 지역문화 예술공연 콘텐츠개발 및 공연예술축제 기획, 예술교육 활동을 펼치며, 깨어있는 감각으로 공연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행동하는 예술단체인 소리짓발전소 서승희 대표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서승희 대표와의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간단하게 한마디로 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자입니다. ( 웃음 )

서산과 태안을 거점으로 전통연희,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공연과 문화예술축제, 지역문화재 활용, 예술교육 등의 콘텐츠를 개발 기획,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단체 소리짓발전소 대표 겸 예술 총감독 서승희입니다.

▲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의 고충이 심하다고 하는데 최근의 근황을 좀 알려 주세요.

코로나 19 시국이 아니어도 문화예술인들은 불안정한 여건 속에서 늘 고충을 감당하며 사는데 올해는 상반기 계획했던 공연이나 행사 모두가 취소 내지는 연기되면서 어려움이 많지요. 특수직으로 분류되면서 긴급지원 혜택도 나라에서 가구당 나오는 지원 혜택이 다인 실정이죠.

올해로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서산 해미읍성 토요상설공연 ‘야단법석 신명날제’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는 해미읍성 밖에서의 버스킹 공연‘해미읍성 바깥놀판’ 모두 아직 공연을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서산시 시설 사업소와 해미읍성 역사보존회에 비대면 온라인 진행을 제안도 해 봤으나 해미읍성 축제가 전면 취소되면서 모든 문화관련 행사는 스톱 상태입니다. 그나마 조금씩 규제가 풀리면서 나아질 뻔 했던 상황도 최근의 수해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시대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소리짓 발전소에서 주최·주관, 운영하고 있는 지역문화재 활용사업 태안군 생생문화재 ‘대한독립만세 옥파 이종일 선생’ 프로그램 중 하나인 8.15 광복절 기념 ‘옥파 행위예술제’는 태안군과 협의하여 비대면 온라인 생방송 행사로 전환, 현재 17일 옥파 생가에서 사전 촬영과 22일 온라인 생방송을 앞두고 있습니다.

▲ 서산에서는 주로 해미읍성과 관련한 활동이 많은 거 같네요?

네, 해미읍성의 역사적 스토리와 공간을 어떻게 무대화 할 것인가? 영감을 늘 메모하며 관심이 많지요. 교황도 다녀가신 세계적인 문화재인 만큼 그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하드 콘텐츠를 개발하고 알려야죠, 그게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해미읍성 축제는 초창기 병영을 주제로 할 때부터 봐왔었어요.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가 2016년 해미읍성 축제추진위원회에 특별공연을 제안 했죠.

전통도 진화하고 있다는 주제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데이’를 기획, 연출해미읍성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해미읍성축제 야간 행사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왔다는 얘길 들었고 성공적 무대였어요. 그 다음해인 2017년에 해미읍성 토요전통 상설공연 운영 단체 공모에 지원, 선정되면서 매년 공모를 통해 지금까지 4년 째 기획, 연출, 운영 해오고 있습니다.

해미읍성은 대한민국 3대 읍성이자 천주교 3대 성지라 불리는 만큼 다양한 역사적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아주 특별하고 매력적인 곳이에요. 조선 시대 서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충청병마절도사가 주둔하였고, 이순신 장군이 군관시절에 약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저 예산으로 지난해에 이순신 군관이 맞이하는 충청병마절도사 부임행렬 퍼레이드를 토요상설공연-야단법석 신명날제 첫 프로그램으로 선보였지요. 분장하시고 의상입고 해미 지역민들 240명이 참여 하셨는데, 퍼레이드 내내 즐거워하시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는 재밌는 축제로 만들자, 성장 발전 가능한 콘텐츠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졌죠. 지역 축제는 지역민들이 들러리가 아닌 주축이 되어야 자생력이 있고 차별화가 있죠. 올해는 더 큰 스케일로 기획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잠정 취소된 상황입니다만 콘텐츠 개발은 진행형 입니다. 해미읍성은 1800년 대 천주교도 천 명이 처형을 당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고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가면서 세계적인 천주교 성지가 되었죠. 그래서 올해 10월에는 천주교 순교자들 넋을 위령하고 코로나 시국으로 지쳐있는 국민들을 위안하고자 제1회 해미읍성영산재를 공연할 예정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아직은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 태안에서는 주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나요?

서울에서 97년 태안군 안면도로 이주하면서 98년 안면도 전역 자연을 무대로 하는 제 1회 안면도 공연예술축제를 만들어 10년간 했었죠.

현재는 문화재청 지역문화재 활용 공모사업 생생문화재 태안군 ‘대한독립만세 옥파 이종일 선생’ 총괄 기획, 예술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옥파 이종일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며 목숨을 걸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 하시고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을 대표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에 비해 너무 알려진 바가 없어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태안군에 제안하여 공모를 통해 2017년, 문화재청 공모사업 생생문화재 시범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지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개발, 운영하고 있어요. 작년 3.1절에는 옥파 이종일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드라마가 KBS에서 방송되면서 전국적으로 선생을 알리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어요. 생생 문화재를 통해 드러난 시너지 효과라 생각합니다. 올해도 역시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지를 거점으로 해서 옥파 온라인 행위예술제, 옥파 사투리 경연대회, 옥파 유료체험캠프, 옥파 교육연극, 옥파 생가 음악회 등 대상을 달리하여 생가지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 본래 고향이 서·태안 지역이신가요?

아뇨, 고향인 포항보다 이 지역에서 더 오래 살았고 몸과 맘을 두고 사니 여기가 고향이죠 (웃음) 어디서 사는가 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죠,,,

▲ 이 지역에 오시기 전에는 어떻게 사셨나 궁금합니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서울 상경, 최고의 연극 극단 중 하나였던 76극단을 들어가게 되면서 대학로에서 연극배우의 삶을 살게 되었죠.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해서 한국공연예술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인간문화재 고 김월하 선생님께 시조창 사사를 받으며 배우생활을 해 나가던 중 1993년 운 좋게 한국연극배우협회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쉐프킨 국립대학교 연수 기회가 주어져 공부하게 됐는데 연극과 예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생겼고 생각들을 키우는 계기가 됐죠.

1995년 대학로에서 당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넌센스’에서 원장 수녀 역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대학로에서는 넌센스에 출연하는 여배우는 인기배우로 인정되는 역할 이였어요. 그렇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1년 정도 공연을 했는데, 매번 똑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원했던 것이 이런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했어요.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표현을 좋아하고 설레임을 느끼는데, 뭔가 틀에 박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 듯 그렇게 소비되고 있는 듯 했어요. 그래서 ‘넌센스’를 그만두고, 1996년에 각기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12명이 뜻을 모아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창조 한다”라는 모토아래 기존의 공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리와 몸짓을 발전시켜 무대표현을 자유롭게 해보자며 공연예술단체 소리짓 발전소를 창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신생 단체에게는 대관 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예술의 전당에서 대관신청을 받아내어 넌버벌 퍼포먼스 천제(天祭)를 공연 하게 되었죠. 이 공연으로 당시 언론과 방송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이렇게 달리다가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공연을 많이 했죠. 그 다음해에 운명적으로 우연히 안면도를 알게 되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안면도로 들어갔어요.

▲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갑자기 아무 연고도 없는 안면도로 내려가 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주변의 만류가 심했죠. 심지어 ‘드디어 니가 미쳤구나’, ‘배우는 서울을 떠나면 물 밖에 나앉은 물고기와 같다는’ 등 대부분의 지인들이 반대를 했었죠. 하지만 인기는 거품이란 생각과 자연 속에서 헛헛한 제 속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달 사이 서울을 정리하고 아무런 연고 없는 안면도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국사봉 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부엌 소극장을 만들어 예약 공연을 하고, 국내 유명 축제부터, 일본, 태국, 이집트 등 외국 유명 페스티발 초청공연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 갔습니다. 지인들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증명 된거죠. ( 웃음 ) 그리고 문화소외지역의 학생은 물론, 지역여성들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이 주축이 되는 연극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렸어요. 안면중학교, 안면고등학교 장을 설득해 만든 연극반의 지도 작품이 충남청소년 연극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또 안면도에 내려간 첫해부터 시작한 ‘안면도 축제’는 6회 때 충남 우수 지역 축제로 선정되어 태안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10회까지 했어요. 그때여서 가능했던 일인 것 같아요.

▲ 정말 지금까지의 삶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인데요,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어릴 때는 유난히 질문이 많은 아이였고 별명이 다분쟁이 였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포항 시 공관에 국립극단이 와서 하는 연극을 첨 봤는데 커튼이 열리면서 분장을 한 배우들, 셋트, 소품들, 무대 위의 세계를 보고 상당히 흥분 했던 거 같아요. 홍당무라는 번역 극 이였는데 연극은 별 재미가 없었지만 보고 나오면서 “내가 커서 저런 일을 하겠구나” 했어요. 문화소외지역에 사는 청소년 예술교육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는 배경이기도해요.

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돼서 학교 행사가 있었는데 학교 운동장에 전교생들이 모인 단상 위에서 직접 대본을 만들어 내 이름은 튜니티 원 맨쇼를 했던 기억이 있죠 (웃음,,,그때 주말 명화로 서부극 튜니티 시리즈가 유행했어요.), 고등학교 시절은 굳이 나서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학생들 앞에서 뭔가를 했었어요. 합창단 지휘자 활동부터 학교 축제 때 반 별 경연행사에서는 콘셒을 잡고 연출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배워서 하는게 아닌거죠.

▲ 지금까지도 많은 활동을 해오셨는데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네요. 향후 새 로운 도전과 계획이 있다면?

지천명이라는 나이가 되면서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보고 주변 지인들은 남들이 다 가는 편안한 길을 두고 남들이 안가는 험하고 힘든 길을 걸으며 새로운 길을 만드는 개척자다. 용감하다, 라고들 하시는데 용감해서 도전 하는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찿아서 해왔을 뿐이예요.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에 잘 쓰여지길 바라죠,,,

올해 서산문화재단이 설립 될 예정인데, 이번에 재단 이사로 위촉 되었어요. 서산문화재단 이사 공모에 도전하게 된 배경은 서산 해미읍성축제를 활성화하는데 일조 하고 싶어서예요. 재단 차원의 활동은 개인 예술단체와는 활동 차원 성격이 다르고,,,지역문화예술진흥 일선에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그리고, 태안군 생생문화재 ‘대한독립만세 옥파 이종일 선생’이 내후년이면, 지속사업으로 선정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요. 지속사업은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2017년 처음 시범사업 시작할 당시 “옥파 이종일 선생의 호를 딴 ‘옥파 문화제’를 만들겠다.”였어요. 지역 문화재를 활용하여 지역문화자원으로 개발성장 하는 일입니다. 씨 뿌리고 수확하는 농사 일 처럼 정성을 다해 시간을 두고 만들어 가야해요. 처음 시범 사업 시작할 때 그 마음을 되새기며 ‘대한독립만세 옥파 이종일 선생’를 잘 운영해서 나아가다 보면 2022년에는 이종일 선생 생가지에서 ‘제 1회 옥파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겠지요. 그렇게 선생의 시대정신을 계승한 품격 있고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제로 성장시켜, 지역민뿐만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태안을 대표하는 문화제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 한 가지는 60대가 되면 배우 서승희로 랑데부할 계획을 갖고 있지요. 응원해 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웃음)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는 우리 일상 전체를 바꿔놨어요.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자신과 가족과 가까운 이웃, 친구,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힘이 들 때 저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대사로 인사드릴게요. 

“누구나 몰려가는 길에 설 필요가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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